일반고가 무너졌다는 소리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 사립고의 위세에 밀려 대학입시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들은 일반고를 기피하고, 자연히 다시 일반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일반고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이런저런 대책을 쏟아내지만 상황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남 탓만 하면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자사고를 없애 그곳으로 갈 학생들을 일반고가 받는다고 해서 일반고가 살아나느냐는 지적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두렵고 귀찮더라도 변하지 않으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고,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대구 고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6명의 베테랑 교사들로부터 일반고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들어봤다.

 

 

◆남과 다른 교육과정이 중요하다(대륜고 김동현 교사)

올해부터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데 많은 자율권이 부여됐다. 그동안 특목고, 자사고와 달리 일반고는 고정된 교육과정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이제 좀 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각 학교도 이제 학교 중심의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관행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학생들의 진로에 맞춰 교육과정을 손질하고 진행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교육과정이 잘 편성됐다고 소문난 학교의 교육과정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이를 그대로 모방할 경우 겉으로는 화려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어른 옷을 입힌 것처럼 어색한 교육과정이 될 뿐이다. 이는 학교마다 학생들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적만 두고 따져봐도 상위권이 두터운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가 교육과정이 같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하위권이 다수인 학교라면 이들을 위한 별도의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좋은 교육과정'이란 각 학교의 학생 수준에 맞춰 특색을 가진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짜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교사들의 이해와 협의가 선행돼야 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지 수요 조사를 시행할 때 주어진 과정과 과목 중에서만 선택하도록 하는 닫힌 설문은 지양하는 게 좋다. 학생이 수강하고 싶은 과목을 제한 없이 적도록 하는 열린 설문이라야 나중에 효과가 더 크다.

소수 학생만이 수강하고 싶다고 한 과목이라도 개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습에 대한 학생의 요구는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학교와 함께 해당 과목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교육과정은 번듯하게 편성했지만 입시,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에 유리하다는 핑계를 대며 실제는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수능시험에 나오는 과목과 내용만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가령 물리Ⅱ, 화학 Ⅱ 과정을 편성해두고 물리Ⅰ, 화학Ⅰ을 반복 학습하거나 고급수학 과정을 운영한다고 하고선 실제로는 EBS 교재를 두고 수학 문제 풀이를 하는 식이다.

대학은 바보가 아니다. 그 같은 관행을 모를 리 없고, 해당 학교의 실적이나 학생부 기록을 믿어주지 않는다. 수시모집이 대세인 현재 대학입시에서 그런 고교의 입시 결과는 당연히 좋을 리 없다.

입시 준비에는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이 유리하다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학생들도 매년 바뀌고 있다. 오래도록 유지해온 강의 중심의 수업이 요즘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 방식으로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한다.

 

 

◆대입 수시모집과 연계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덕원고 김명수 교사)

특목고나 자사고 등 일부 학교는 우수한 학생을 쓸어가 성과를 올리고 일반고는 최대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은 다양한 종류의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유형별로 다양한 종류의 교육이 제공돼야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구 경우 정시모집에 치중, 수능시험 성적 올리기 경쟁이 더욱 두드러져 왔던 게 사실이다. 수시모집에서 전체 인원의 65%를 선발하는 현실에서 35%에 그치는 정시모집에 목을 맨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수시모집 준비에 대한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생 지도와 동시에 다양한 수시모집 전형에 대한 지원 전략을 세세히 수립하기 쉽지 않다. 선발 인원이 많은 전형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전략을 수립한다 해도 고3이 돼서야 부랴부랴 준비하는 것 또한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반고 역량을 강화하려면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면 학교별로 특성화된 교육과정도 가지면서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 분야에 있어서도 현실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각 교육청은 일반고가 학교 교육과정 자체를 수시모집 전략과 연동해 설계할 수 있도록 수시모집 전형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고 진로`진학에 대한 전략, 학교별 맞춤형 교육과정 설계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희망을 준답시고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힘든 특수 사례 몇 가지를 제공하는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다수 학생이 지원하고 진학하고 싶어 하는 인기 대학, 인기 학과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제공돼야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맞춤형 진학 지도의 성공 사례, 학교별 효율적 교육과정 설계 방법을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핵심은 일반고가 학생의 진로`진학에 대한 지도 방식, 경쟁 방식에 대해 특목고, 자사고와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일반고의 역량 강화는 물론 교육 다양성 확보라는 고교 다양화 정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업 개선에서 답을 찾자(효성여고 박규장 교사)

지난 몇 년간 특목고와 자사고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서 일반고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고 있다. 일반고는 우수한 신입생이 줄어들어 고민이다. 더구나 특목고, 자사고에 비해 학생 수준이 천차만별인 탓에 이들을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일반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역량과 소질에 맞는 맞춤형 진로 집중 교육과정을 개설해야 한다. 진로 집중형 교육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각 학생이 진로에 맞춘 수업을 듣고 탐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시모집에 맞는 입시 전략을 다양하게 세울 수 있다. 정규 수업 시간 때 적용하기 힘들다면 현재 수능시험 위주로 돌아가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바꿔 이 과정을 진행하면 된다.

학교별로 챙기기 어려운 소수 선택 과목은 여러 학교가 연합해 운영하는 것이 좋다. 대구에서 이 방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는지는 의문이다. 이 같은 방식이 왜 필요한지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을 이해시키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교실 수업의 개선이다. 수업을 바꾸지 않고는 학교의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교사들은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칠 게 아니라 학생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 교과를 재구성, 수업에 적용해야 한다. 해당 수업 때 한 단원 전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몇 가지를 꼭 익히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수업 방식에 변화를 준 뒤에는 학생들의 활동에 따른 결과물을 만들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진로에 맞춘 학습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각종 교내 대회도 활성화해야 한다. 강의식 수업, 수능시험 위주 수업에서 탈피해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을 해야 교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일반고에는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다닌다.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활동을 하려면 각 학생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고민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규 수업과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짜고, 이 두 가지가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특색 있는 '학교의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더 좋은 진학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교육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공교육 정상화의 기틀을 다지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동아리 활동 내실화에서 활로 찾자

 

▷원화여고 이영세 교사=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이 확대 추세다. 수시모집에선 학생들의 다양한 체험 활동이 합격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교과 수업 못지않게 동아리 활동이 중시돼야 한다.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이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각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 다양한 체험 활동 확대라는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 의문이다.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려면 우선 이 활동에 대한 지도교사와 관리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동아리 활동이 시간 때우기 식으로 운영돼선 곤란하다. 학생들에겐 교과 수업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동아리를 조직하고 학생들을 가입하게 하는 방식도 버려야 한다. 최대한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해 동아리를 꾸려야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내고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 또 동아리 활동 후엔 발표회나 경연 대회 등을 통해 반드시 그 활동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해야 교육 활동으로서의 의미가 커진다.

 

▷대구동부고 조상환 교사=일반고의 역량을 강화하려면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자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학습 과정 및 전략, 학습 자원을 결정해 학습을 수행한 뒤 학습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일련의 학습 과정이다.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자기주도학습 동아리를 운영하는 게 효과적이다. 소논문, UCC 발표대회를 열어 학습 동아리 활동 결과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그 결과를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기재하면 대입 수시모집에도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강북고 이봉우 교사=주말을 이용해 구성원이 함께 토론, 실험하고 공부하는 학습 동아리를 운영하는 게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이 꿈꾸는 진로에 따라 모인 동아리는 강의식, 주입식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 스스로 활동을 주도하고 책자 발간, 결과물 발표 등의 과정까지 진행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리더십, 협동 정신과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 친구는 물론 선`후배 간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도 장점이다. 학교 입장에서도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높일 수 있는 데다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돼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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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가봐야할 여행지 란 제목으로 소개한 장소들이 인터넷에 많이 있습니다.


얼마전 Quora.com 도 "죽기전" 시리즈로 뽑은 여행지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초 현실적인 곳"을 소개했더군요.


아마도 죽기 전에 못가볼 듯, 사진으로나마 감상 해 봅시다.

 




1.호주 화이트헤이븐 해변



2.네덜란드 튤립 밭


3.노르웨이 트롤퉁가 전망대


4.뉴질랜드 글로웜 동굴


5.러시아 캄차트카 화산


6.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세노테


7.몰디브 바드후 섬


8.미국 그랜드 캐년


9.미국 알래스카 멘덴홀 얼음 동굴


10.미국 애리조나 안텔로프 캐년


11.베트남 항손둥 동굴


12.벨리즈 그레이트 블루 홀


13.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


14.브라질-베네수엘라 로라이마 산


15.스코틀랜드 스타파 섬 핀갈 동굴


16.아르헨티나-칠레 카레라 호수 대리석 동굴


17.에콰도르 바뇨스 세상의 끝 그네


18.우크라이나 사랑의 터널


19.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의 켈리무투 크레이터 호수


20.중국 간쑤성 단샤 지형


21.터키 아나톨리아 고원


22.하와이 하이쿠 계단



출처: 위키트리

 

三星創業主 李秉喆 會長,他界 한달 前 天主敎에 24個項

 

宗敎 質問 …

 
차동엽 神父, 24年 만에 答하다.중앙일보 2011.12.17. (j Story]에서)

1987 이병철 회장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불행 주는가 ”
2011 차동엽 신부 “신이 준 건 자유의지 … 그것 잘못 쓸 땐 고통 ”


잠자던 질문이 눈을 떴다. 무려 24년 만이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내밀었던 종교적 물음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24개의 질문은 A4용지 다섯 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신(神)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라는 첫 물음부터 “지구의 종말(終末)은 오는가?”라는 마지막 물음까지, 경제계의 거목이 던졌던 종교적 질문에는 한 인간의 깊은 고뇌가 녹아 있다. 그 고뇌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종교적 물음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이 질문지는 1987년 ‘천주교의 마당발’로 통하던 절두산 성당의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이를 가톨릭계의 대표적 석학인 정의채(86·당시 가톨릭대 교수) 몬시뇰에게 건넸다. 정 몬시뇰은 답변을 준비했고, 조만간 이 회장을 직접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다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건강이 좀 회복되면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이 회장은 폐암으로 한 달 후에 타계하고 말았다. 문답의 자리는 무산됐다. 정 몬시뇰은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했다. 그러다가 2년 전 제자인 차동엽(53·인천가톨릭대 교수·미래사목연구소장) 신부에게 질문지가 들어갔다. 차 신부가 여기에 답을 준비했다. 그 답을 모아 연말에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사)이란 책을 낸다.

 8일 경기도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정 몬시뇰과 차 신부를 단독 인터뷰했다. 가톨릭 신자이자 서강대 총장을 역임한 손병두(70) KBS 이사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교계의 최고 원로인 정 몬시뇰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차 신부님에게 넘어갔네요”라고 운을 뗀 뒤 “이건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던졌던 인간과 종교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차 신부님이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도 공유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차 신부는 “몬시뇰께선 제 스승이시다. 종종 뵙고 교감한다. 몬시뇰께 배운 가르침을 제가 대신 풀어냈을 뿐이다”고 답했다. 손 이사장은 삼성그룹 비서팀에서 10년간 이병철 회장을 보필했다. 탁자 위에 놓인 질문지를 본 손 이사장은 “당시 회장 비서실에 있었던 필경사의 필체가 틀림없다. 딱 보니 알겠다. 이 회장께 보고서를 올릴 때면 필경사가 깔끔하게 다시 써서 올렸다. 오랜만에 이 글씨를 보니 참 반갑다”고 말했다.

 
질문지를 손에 들고 쭉 훑어보던 차 신부는 “이 질문을 깊이 파고들어가 보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던지는 종교적 물음과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마주 앉은 차 신부에게 물었다. 이병철 회장이 던졌던 인간과 종교, 그리고 신에 대한 ‘잊혀진 질문’을 24년 만에 다시 던졌다. 차 신부는 “이 질문지에는 지위고하도 없고, 빈부도 없다. 인간의 깊은 고뇌만 있다. 나는 그 고뇌에 답변해야 하는 사제다. 그래서 답한다”고 말했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첫 질문은 둘러가지 않았다. 바로 과녁의 정중앙을 향했다. “신이 있는가.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나.” 역사 속에서 수없는 무신론자가 던졌을 물음이다. 무신론자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유신론자도 기도 속에서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 회장의 첫 질문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이었다.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령 개미와 코끼리를 보라. 개미는 이차원적인 존재다. 작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겐 평면만 존재한다. 입체도 개미에겐 평면이 된다. 그런 개미가 코끼리 몸을 기어 다닌다. 개미는 코끼리 몸을 느낀다. 그러나 코끼리의 실체를 파악하진 못한다. 왜 그런가. 개미의 인식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코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개미는 코끼리를 모르는 건가.

 “아니다. 개미는 코끼리를 느낀다. 코끼리의 부위에 따라 다른 질감을 느낀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인간도 그렇게 신을 느낀다. 우리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 뿐이다. 신은 자신의 존재를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 물리학에선 우주의 차원을 11차원이라고 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너머의 차원까지 관통할 것이다. 3차원적 존재가 11차원적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나. 흑백TV로 3D컬러 영상물을 수신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돼 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그리스어로 ‘말씀’은 ‘로고스(Logos)’다. 로고스의 뜻이 뭔가. ‘원리’다. 다시 말해 ‘존재 원리’를 뜻한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의 첫 구절은 ‘태초에 존재 원리가 있었다’가 된다. 우주에는 기가 막히게 섬세한 질서가 있다. 결국 그러한 존재 원리, 그리도 섬세한 질서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거다.”


◀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24개 물음을 담은 질문지.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이다.

●그 근원은 뭔가.

 “만물의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신을 만날 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그럼 신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가톨릭 신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은사 신부님을 통해 고(故) 최민순(1912~75) 신부님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최 신부님은 아침 수업에서 이런 시상(詩想)을 내놓았다고 한다. ‘꽃을 본다/꽃의 아름다움을 본다/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제겐 충격이었다.”

●왜 충격이었나.

 “우주의 철리(哲理)가 사통팔달로 뚫리는 기분이었다. 꽃의 아름다움, 나무의 아름다움, 땅의 아름다움, 하늘의 아름다움이 모두 하나의 고백이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결국 한 송이 꽃을 통해서도 신을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이 자신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거다.”

이 회장의 물음은 ‘창조’에서 ‘진화’로 이어졌다. 신의 창조와 인간의 진화는 양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철저하게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그건 신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가장 현대적인 접점이기도 하다.



차 신부는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라는 대담을 중앙일보(2009년 2월 5일자 21면, 9일자 25면)에서 한 적이 있다. 차 신부는 물리학계의 거두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에서 “신이 인간을 빚었나?”라는 물음에 소상하게 답한 바 있다. 당시 대담 내용을 끄집어내며 차 신부는 답을 이어갔다.

 “‘하느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 방식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 거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의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 계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건 단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 된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지구의 환경, 우주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끝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날까.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1916년 미국 과학자 중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를 했던 제임스 류바는 미래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1997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딴판이다. 81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국 과학자의 40%가 여전히 유신론자라고 나왔다. 그 81년간 과학 발전의 총량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 대립적 관계가 아닌가.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고 말했던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약간의 과학(A little science)은 사람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하늘과 땅’을 물었다. ‘신과 인간’을 물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물결과 고통의 물결을 번갈아 물었다. 신이 사랑한다는데, 왜 우리는 고통스럽냐고. 신이 있는데, 왜 세상에 악인도 있느냐고. 그걸 물었다.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생명이 피어난다/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럼 고통은 언제 오나.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 뭔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천주교’란 과녁을 향하던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종교’라는 더 큰 과녁으로 시위를 돌렸다. 종교가 뭔가, 왜 필요한가, 영혼이란 뭔가, 각 종교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가. 불과 서너 가지 질문에 ‘종교학 개론’의 뼈대가 담겨 있다.



 “벼락이나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는다. 마취 직전, 수술대에 누운 이들도 기도를 한다. 무신론자도 슬픔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 무한을 동경한다. 영원을 갈망한다. 그런 염원이 하나의 형식이 됐을 때 종교가 된다.”

●종교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은 영원을 찾다가 자꾸 벽에 부딪힌다. 부딪힐수록 무한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결국 동경하던 무한성에 ‘신’이란 이름을 붙인 거다. 그 무한성을 인격체로 여긴 사람들이 그걸 숭배하게 되고, 도움 받기를 청하는 거다. 자신이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으니까. 결국 인간은 종교라는 터널을 통해 영원을 갈망하는 거다.”


 “그리스 철학은 유신론이 아니라 자연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세 가지 혼이 있다고 한다. 생혼(生魂)과 각혼(覺魂), 그리고 영혼이다. 모든 생물의 중심에 생혼이 있다고 한다. 나무나 풀에도 생혼이 있다. 나무의 수명이 다하면 생혼도 죽는다. 다음은 각혼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는 동물에겐 생혼과 각혼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겐 생혼과 각혼에다 영혼까지 있는 거다. 물질계를 초월하는 생명현상, 그게 영혼이라는 거다. 영혼이 제대로 작동할 때 우리는 본래의 인간에 더 가까워진다.”


  “크게 계시 종교와 자연 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계시 종교다. 힌두교와 불교는 자연종교에 속한다.”

차 신부의 설명은 간략했다. 이웃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항목이었다. 질문은 다시 ‘천주교’를 향했다. 이번에는 ‘구원의 범위’에 대해서였다. 종교가 없어도, 혹은 달라도 착한 사람들. 신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 이 회장은 물었다.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다 바뀌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공부해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에 입장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타 종교인의 구원 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65년 이전에는 개신교도 다른 종교와 구분 없이 남으로 봤다. 그런데 65년 이후에는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겠다. 내용이 겹친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인 신념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미리 고백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임종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나의 여행 채비는 다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갔다는 뜻이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강한 증거가 있나.

 “12사도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은 있다.’ 이걸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


 “개그 프로를 보면 ‘이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불공정한 사회라는 거다. 악인이 버젓이 잘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부조리 현장에서 신이 침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공정 사회를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탐욕이다. 한국이 불공정 사회라면 그걸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주체는 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말했듯이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 기회를 주는 거다. 죽기 전에 악인이 회개할 수도 있고,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신의 자비를 본다. 벌은 사후 또는 종말 때 주어진다.”

‘한국 최고의 부자’가 부자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성경 속의 부자와 바늘구멍. 이 회장의 물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님의 메시지다. 부자에도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이웃과 잘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국에 가지 않겠나. 주위를 보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부자도 늘 그런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살아보면 상당히 질서가 있다. 물론 마피아가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범죄집단일 뿐이다. 이탈리아 국민의 평균적 윤리의식, 그들의 기준은 엄정한 편이다.”


 “이 질문에 100% 동의한다. 다를 바가 없다. 똑같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신앙이 가능하다. 이 셋 중 하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몽상가나 다혈질 행동파가 될 수도 있다. 주로 ‘오직’을 강조하는 사람이 광신도가 될 소지가 많다. 오직 믿음, 오직 실천, 오직 성장, 오직 복지, 오직 우(右), 오직 좌(左), 오직 사랑, 오직 정의도 다 위험한 것이다. 종교든, 이념이든 보편성을 잃을 때 미치게 되는 거다.”


 “공산주의는 천주교 신자가 택한 것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이탈한 무신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거다. 공산권에서 종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협력 관계나 우호적 관계가 아니었다.”

1989년에 사회주의권 몰락이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기 2년 전에 던진 것이다. 질문의 시점과 답변의 시점에 시대적 시차는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종교인의 범죄 비율보다 비종교인의 범죄 비율이 더 높다. 그나마 종교인이 범죄 수치를 낮춘 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시사하는 바를 깊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이 더 사회정화 기능을 하지 못하고, 더 성숙하게 살지 못하고, 좀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형식만 그리스도인이지, 내용은 안 바뀐 경우도 많았다. 빛과 소금 역할,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교황의 무오류권(무류권)을 말한다. 가톨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무오류권은 교황좌에서 특별한 교리, 엄중한 진리의 문제에 관해 천명할 때 무오류권을 발동한다. 주로 기준이 애매할 때 이 기준을 따르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발동된다. 그러나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도 시간이 지나면 수정될 수 있다. ‘타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인데, 결국 수정했다.”


 “신부는 예수님을 대리해 양떼를 돌보는 사람이다. 1965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양떼였다. 65년 이후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양떼다. 수도원 소속인 수녀와 수사는 다 수도사다. 그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해 영혼의 갈무리를 하는 사람이다.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나는 여기에만 헌신합니다’라는 서원이다. 기혼과 독신이 섞여 있다가 13세기부터 사제는 독신이 됐다. 수도사는 그 이전부터 독신수도 생활을 했다.”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다. 그건 개별적 사안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종말이 언제일까. 내가 죽는 날이 종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오메가 포인트(종말의 시점)가 있을 거다.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 올 테니까. 성경에는 종말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보는 시각이 좀 다르다. 파국만은 아니다. 구원을 위한 최종 추수의 시간으로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린다. 종말을 기대하는 사람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 신앙인의 특권은 종말을 희망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종교는 결국 종말 너머를 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마지막’에 관한 것이었다. 타계 한 달 전, 24개의 질문을 던진 이 회장에게 그 마지막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질문지는 우리에게 그걸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마지막’이라 부르는 곳, 종교에선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곳. 어쩌면 마지막과 시작이 하나일지 모르는 곳. 그곳을 묵상케 한다. 동시에 이 회장의 질문은 마지막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 건가 하는 치열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이병철 회장


삼성 창업주인 이 회장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 87년 타계했다. 호는 호암(湖巖). 유교적 가풍의 집안에서 성장했고,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는 등 일제시대에 민족자본을 형성했다. 여기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호암의 지향이 깔려 있다. 평소 호암은 “내가 뽑은 인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아름답고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재제일(人材第一)’과 ‘사업보국’은 삼성그룹의 경영철학이 됐다. 초대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호암은 타계 2년 전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 직후에 호암은 일본인 저널리스트 야마자키 가쓰히코와 만나 ‘좋은 죽음’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호암은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겠지요. 불치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살아서 아등바등하는 흉한 꼴만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걸 듣고서 야마자키는 “사는 순간까지 삶만을 생각하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구도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서에 『우리가 잘사는 길』 『호암자전(湖巖自傳)』 등이 있고, 호암 평전으로 『크게 보고 멀리 보라』(야마자키 가쓰히코 지음)가 있다.

차동엽 신부


1958년생. 서울 관악산 기슭의 달동네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게로 연탄과 쌀을 배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 때문에 공고에 진학했고,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 다시 가톨릭대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다. 199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로베르토다.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수학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 가톨릭대 교수이며,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차 신부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말하곤 했다. 연구소 후원 계좌로 ‘추기경’이란 직함 없이 ‘김수환’이란 이름만 적어서 100만원을 입금한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은 뒤늦게 확인됐다.

차 신부의 대표 저서는 『무지개 원리』다. 지금껏 150만 부가 팔린 천주교계 최대 베스트셀러다. 이 밖에 『바보 Zone』 『뿌리 깊은 희망』 『행복선언』 등이 있다. 20대부터 간염과 간경화를 앓고 있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학생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넌 할 수 있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충북도교육청은 최근 초ㆍ중ㆍ고등학생(726명)과 교직원(220명), 학부모(137명) 등 1천83명을 대상으로 한 '학교 언어문화 설문조사'에서 50.2%(544명)이 이같이 응답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어 '너 성격 참 좋다!' 18.8%(204명), '○○야! 사랑해!'11.3%(122명), '○○야! 고마워!' 9.9%(107명), '오늘은 기분이 좋으네' 9.8%(106명) 순으로 집계됐다.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집에서 그렇게 가르치냐!'가 33.9%로 많았으며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26.8%, '넌 어쩜 그러냐' 21.0%, '컴퓨터 그만하고 공부해라!' 12.7%, '옷이 그게 뭐냐' 5.6%로 조사됐다.

  

'교사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선생님, 수업 완전 재미있어요' 43.8%, '선생님, 고맙습니다' 29.4%, '선생님, 사랑해요' 14.4% 등이었으며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은' '아∼ 정말 짜증나!' 37.8%, '옆반은 ○○해 주셨는데, 선생님은 왜 안해주세요' 26.4%, '수업이 너무 지루해요' 23.4% 등으로 대답했다.

  

또 '학부모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애들 참 잘 키우셨어요'는 32.8%를 우선 꼽았으며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엄마가 해준 게 뭐가 있어요' 35.2%, '잘 알지도 못하면서…' 30.2%, '엄마(아빠) 왜 그렇게 무식해?' 16.6%, '선생님이 내일 오시래요' 9.6%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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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무덤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1227년 중국 북서부를 정벌하다 사망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으나 매장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정복자의 무덤이 발견된다면 이는 역사적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일리노이의 변호사이자 기업가 모리 크라비츠(78)는 지난 18년간 4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몽골리아의 북부 중앙 지역을 뒤진 바 있다.

스페인 겔리온선 산 호세는 1708년 6월 컬럼비아 해안에서 영국 전함들을 피해 달아나다, 원인 불명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600미터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이 보물선에 실린 금과 은과 에메랄드 등은 최대 2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러시아의 앰버 룸 (amber room 호박의 방)은 1716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러시아 표트르 황제에게 선물한 것으로, 러시아 왕족의 여름 궁전에 만들어진 화려한 보석의 방이다. 호박 패널과 황금 이파리 그리고 거울로 가득한 이 앰버 룸을 두고 영국의 외교관은 “세계 제 8대 불가사의”라 칭하기도 했다. 2차 대전 중 나치는 바로크 예술의 걸작품이라 불리는 앰버 룸의 보석과 장식물들을 뜯어내 어디론가 운반했다. 보석을 운반하던 배가 1945년 침몰되었다는 설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설 등이 난무하다.

기원전 14세기에 살았던 고대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는 완벽한 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또한 강력한 개혁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다.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이다. 그러나 네페르티티의 무덤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왕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당시 정치상은 어땠는지 밝혀줄 그녀의 무덤은 모든 고고학자들이 찾아내고 싶어 하는 고고학적 보물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성배’이다. 예수가 마지막 만찬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접시 혹은 잔이 성배이다. 성배에는 기적의 힘이 담겨 있으며, 전설과 영화와 소설 속에서 끝없이 언급되는 인류 최고의 미스터리이다. 역사학자들은 성배가 가공 물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상상력은 성배 추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는 실제로 존재할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03년 피렌체의 의뢰를 받아 베키오 궁전 벽에 이 위대한 걸작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506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벽화를 미완성 상태로 남겨두고 떠났으며, 전형적인 프레스코 기법 대신 유화로 그렸었다고 설명한다. 말 탄 군인들의 숨 막히는 전투 장면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16세기 중반 궁전이 개축되면서 사라졌다. 아무도 이 위대한 걸작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아멜리아 이어하트가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사라진 7대 불가사의’의 주인공이다. 여성 인권 운동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대서양을 단독으로 비행 횡단한 최초의 여성인 이어하트는 1937년 항법사 프레드 누먼과 함께 세계 일주 비행에 나섰다가 태평양 하울랜드 섬 부근에서 교신이 두절되고 실종되었다.

그녀의 비행기와 유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고 경위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울랜드 섬에서 500km 떨어진 무인도에 추락해 수개월 동안 생존했다는 추정이 있다. 또 미군의 스파이 역할을 했던 그녀는 일본군에 체포되어 숨졌다는 설도 있다. 그녀의 실종을 설명하는 이론은 무려 30가지.

아직도 미국인들에게는 전설적 여성 조종사인 이어하트의 죽음과 사고 경위는 미스터리인 것이다.


 EBS 방송 <공부의 왕도> 제 88 회

 

 학교의 전설이 말하는

내신 1등급 노하우

- 고혜영 (순천향의대 2) -

 

   방송일시 : EBS  2011. 5 . 25 / 24:05 ~ 24:35

   


 의과대학 5개, 한의대 2개, 서울대학교 자연계열까지

모두 8개 대학에 동시 합격하여 모교의 전설이 된 고혜영!

 

대구 경명여자고등학교에는 전설의 선배가 있다. 체육대회 때도 수학책을 폈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를 했고 수업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까지 선생님들을 쫓아다닌 것으로 유명한 고혜영 학생! 그렇게 공부한 결과 혜영 양은 3년 평균 내신 1.02 등급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의대 다섯 곳, 한의대 두 곳에 서울대학교 자연계열까지 모두 8개 대학 합격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입시결과였다.

과목별 전략을 찾아라!

과학탐구영역 맞춤 노트가 곧 비법이다!


이과생들의 고민인 과학탐구영역. 혜영 양은 몇 권의 노트로 과학탐구영역을 정복했다. 교과서와 참고서는 물론 문제를 풀면서 알게 된 정보들과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까지 모두 한 권의 노트 안에 압축을 했는데, 과목별 특성에 맞춰 노트의 형식은 달라진다. 그림을 토대로 문제 출제가 많은 생물과 공간 감각이 필요한 지구과학의 경우 그림을 중심으로 정보를 모아 한 눈에 이해가 쉽도록 했다. 실험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문제가 출제되는 화학의 경우 다양한 실험들을 정리했는데 실험 목표와 과정 및 내용, 결과의 3단계로 알기 쉽게 정리했고 오답노트를 통해 개념을 다시한번 익혔다. 혜영 양의 발목을 잡았던 과목인 물리. 물리는 생물노트처럼 그림을 중심으로 정리를 하고, 화학노트처럼 문제풀이 노트를 만들어 공부를 했다. 생물노트와 화학노트의 장점만 취합하여 완성시킨 것이다.


풀이의 흔적을 남겨라!

수학 오답 노트가 곧 비법이다!


고 3, 6월부터 9월 사이. 수험생들에게 스트레스가 많은 이 시기에 혜영 양을 괴롭힌 것은 수학이었다. 늘 높았던 수학 성적이 갑자기 불안해진 것이다. 그런 혜영 양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선생님의 수업과 자신만의 수학노트였다. 학생들 앞에 나와 수업을 주도하며 문제를 풀면서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 혜영 양은 문제를 풀다가 틀리면 그 아래에 계속 답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풀면서 다양한 방식의 풀이법과 사고의 흔적을 남겼다. 이런 오답노트는 어떤 과정에서 사고가 잘못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어 같은 실수를 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문제점을 쉽게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경쟁에 집착할수록 성적-실적-연봉 다 떨어져"


경쟁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임금의 차등화를 통한 경쟁 강화는 직장에서 사람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하여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 그리고 학교에서는 학업 성적의 서열화를 통한 등수 경쟁으로 학생들이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되어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경쟁 강화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일하게 하여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경쟁의 산물인 라이벌 의식으로 학생은 친구(라이벌)와의 경쟁을 통하여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직장인은 업무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라이벌과의 경쟁을 통하여 자기 개발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경쟁의 스트레스를 이기는 강한 성격을 소유하게 하며,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는 정신을 키우게 한다는 것이다.

 

경쟁을 강화하면 과연 우리는 더 열심히 하고 잘하게 될 것인가. 학교에서 서열을 정하고, 등수 경쟁을 시키면 학습 효과가 올라갈 것인가.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우게 되고, 바람직한 성격을 형성하고 미래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긍심과 자신감, 창의력과 인내심, 사회적 배려와 같은 덕목들을 배양하게 될 것인가.

 

직장에서 서열 경쟁이나 임금 차등화를 통한 경쟁 강화는 사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창조적이 되어 그 기업에 이익이 될 것인가.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동료들 간의 유대 강화나 정보 교환 등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인가.

 

경쟁이 심해질수록 성과는 떨어진다 : 'n 효과'

 

인간이 경쟁으로부터 동기를 부여받고 라이벌 의식으로 더 열심히 더 잘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경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경쟁의 강도 상승이 실력이나 성과를 높이는 등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그러면 만일 경쟁자의 수가 더 많아져서 더욱 경쟁이 심해지면,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 더 잘할 것인가 아니면 더 못하게 될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스테판 가르시아라는 미시간 대학의 교수와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교수인 마비사롬 토르는 연구를 통해 경쟁자의 수와 시험을 보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 사이의 재미있는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대학 입시 평가에 쓰이는 SAT 시험에서 시험장에 수험생 수가 많을수록 평균 점수가 떨어진다는 결과를 발견한 것이다. SAT 시험뿐만 아니라 다른 시험인 인식 반응 시험(Cognitive Reflection Test)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경쟁자 수가 많을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수험생들

 

이러한 흥미로운 결과에 두 교수는 이 결과가 경쟁의 증가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시험장에 더 많은 수험생으로 많은 사람으로 주의가 산만해져서 생긴 결과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다른 실험을 한다.

 

이 실험에서는 각 수험생이 혼자 시험을 보며, 각 수험생에게 경쟁 수험생의 수가 몇 명인지를 알려준다. 시험은 주어진 수의 간단한 문제들을 가능한 빠른 시간에 푸는 것이다. 수험생들의 절반에게는 경쟁 상대의 수가 10명이라고 말해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100명이라고 말해준다.

 

시험을 완성하는 데에 경쟁 상대의 수가 10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100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빠르다는 결과를 얻는다. 경쟁자의 수가 더 많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들의 성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경쟁자의 수가 많을수록 느려지는 달리기 선수들

 

이 두 교수는 또 다른 실험을 한다. 이 실험에서는 실험 대상이 가상 경주를 한다. 이 가상 경주에서는 함께 경주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가 50명과 500명의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하고 있다. 각기 경쟁자 수가 다른 이 두 가상 경주에서 실험 대상은 자신의 보통 달리는 속도보다 얼마나 더 빨리 달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이 결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0명 집단의 가상 경주에서 500명과의 가상 경주에서보다 더 빨리 달릴 것이라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경쟁자의 수가 많을수록 더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것이다. 경쟁이 더 심해질수록 동기 부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두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한지를 심리학의 방법을 이용해서 측정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500명과의 가상 경주에서 더 낮은 점수를 얻는다는 상관관계를 얻는다. 즉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경쟁이 강화되면 성과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두 교수가 발견한 효과를 'n 효과'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n은 경쟁자의 수를 나타낸다.

 

경쟁의 강화가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연구한 것으로 그 연구 결과가 아주 재미있다. 보통의 경우에 우리는 경쟁이 강화되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인 셈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많이 하는 사람, 즉 일반적으로 경쟁심이 강한 사람에게 그 반대 효과가 더욱 세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싫어하는 결과가 예상되는 일들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한다. 경쟁이 심해지면 우리는 경쟁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은 우리가 그 경쟁을 회피하려 하거나 또는 경쟁 동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

 

특히 경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일수록 동기 위축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경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실패할 것이라는 불안감 증가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성과를 낮춘다.

 

경쟁 학습이 학업 성취를 낮춘다

 

협동 학습은 학생들이 한 집단 내에서 서로 협동하여 하는 학습 방법으로 서로 성적이나 등수 경쟁을 통한 경쟁 학습과 대비된다. 협동 학습은 여러 학생들이 한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과 같은 학습을 통하여 서로 도우며 배운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육은 학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경쟁 학습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학습의 평가는 상대 평가로 각 학생의 진정한 실력이나 인성의 발전보다는 등수로서 평가되는 교육이다. 이 교육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완성하는 작업에서 필요한 협동, 의견 교환, 분쟁 해결, 상호 이해 등의 지적 발전과 함께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여러 중요한 발달이 무시된다. 경쟁 학습에서는 협동이나 친구들과의 의견 교환 등이 필요 없고 각 개별 학생이 고립되어 수행한다.

 

경쟁 학습은 사회 활동에서 도움이 되는 여러 방면의 발달을 저해할 뿐더러 학업 성취 면에서 역시 협동 학습보다 열등하다. 박일수(한국교원대학교 박사 과정)는 그의 연구 논문 '협동 학습의 학업 성취 효과에 관한 메타 분석'에서 협동 학습은 경쟁 학습에 비해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효과적인 교수 방법이라고 하며, 협동 학습은 경쟁 학습에 비하여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15.77퍼센트(%) 향상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민혜리(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는 협동 학습을 통하여 학습 동기와 학업 성취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협동 학습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폭을 넓히며, 동료와의 협동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고 의사소통과 사회적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몰톤 골드만과 그의 동료들은 미주리 대학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협동 상황과 경쟁 상황에서 글자 수수께끼를 푸는 실험을 하였다. 그들은 이 실험에서 협동적 상황에서 경쟁 상황보다 더 좋은 실적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베인 워니는 골드만과 비슷한 실험을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카드 게임을 통해 실행하였다. 그는 학생들이 경쟁할 때보다 협동적 상황에서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 경우에 경쟁보다 협동을 통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주제에 대하여 여러 학생이 공동 연구를 하는 과제를 생각해보자. 각자 나름대로 조사하고 생각한 결과들을 모아 전체에 대한 이해나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이 한 조사나 연구 이상의 것을 배우고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각자의 공헌도가 서로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공헌도 역시 큰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자료 찾는데 공헌을 했다거나, 어떤 학생은 더 많은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거나, 어떤 학생은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데 더 많은 공헌을 했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다른 학생을 도와 문제를 이해시키고 또 더 많이 가르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각자 하는 일이 다양하고 또 공헌도 역시 다양할 것이다.

 

그러면 '누구는 일을 더하고 더 똑똑한데, 평가는 공동으로 받는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평가와 그에 따른 서열만을 중시한다면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평가는 등수보다는 실제 한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습득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등수는 내가 못해도, 다른 사람이 더 못하면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등수 자체는 자신의 실력 향상을 나타내지 못한다. 똑똑한 학생이 등수로 보상을 받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그 똑똑한 학생 역시 공동 과제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된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 지식이 더 확실해지고, 그리고 더 깊은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에, 똑똑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도와주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협동 학습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염려에 대하여, 민혜리(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는 오히려 협동 학습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수한 학생이 동료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습에 대한 흥미, 동료에 대한 애착, 언어 기술, 그리고 높은 사고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협동 학습이 지식 습득 면에서 도움이 될뿐더러 '더불어 사는 능력' 배양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의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는 경쟁 학습의 지나친 강조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더불어 사는 능력'과 같은 교육이 부족하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한국 청소년 핵심 역량 진단 조사'란 연구에서 지역 사회 단체와 학내 자치 단체에서 '관계 지향성''사회적 협력' 부문의 점수가 모두 0점으로 36개국 중 최하위였다. 이 결과는 현재 한국의 입시 경쟁이 청소년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경쟁적인 사람은 실적이 낮다

 

일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는 경쟁성을 이야기한다. 경쟁성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의욕 역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일에 대한 의욕은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보다는 승패와 상관없이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경쟁적인 사람의 실적이 높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로버트 헴리치는 일에 대한 의욕이 있는 사람들에 있어서 경쟁적인 사람의 실적이 오히려 낮아진다고 한다. 그는 103명의 박사들에 대하여, 그들이 얼마나 경쟁적인지 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경쟁성과 그들의 논문 인용에 따른 업적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작업 의욕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에 경쟁성이 낮을수록 논문 인용의 정도가 높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슷한 연구를 기업인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그 결과 공부 의욕이 높은 대학생들의 경우에 경쟁성이 낮을수록 높은 성적을 거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MBA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경쟁성과 보수의 관계를 알아보았다. 여기서도 일의 의욕이 큰 사람들일수록 경쟁성이 낮은 사람이 평균 연봉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이들의 학업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예술 활동에서도 경쟁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욕이나 흥미를 유발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는 미술 대회를 상상해보자. 이기기 위해서 그리는 그림은 그냥 자신이 하고 싶어서 그리는 그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쟁성이 높다는 의미는 자발적 동기에 의하여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성을 높인다는 의미는 자발적 의욕은 저하시키고 이겨야 하는 승부욕을 키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입시 경쟁에서 아이들이 하기 싫은 주입식 교육을 시키려니 경쟁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등수로 비교하고,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며 경쟁심을 자극한다. 경쟁성은 단기 효과를 얻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경쟁성 강화는 장기적으로 교육이나 학문에 필요한 진정한 흥미나 욕구를 키우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사회와 자연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그들 각자가 갖는 성격, 특징, 장점과 단점이 형성되어 가고, 각각 서로 다른 흥미, 의욕 그리고 재능이 발달한다. 한국의 입시 경쟁에서 아이들은 나름대로 발전할 권리는 박탈되고, 적성이나 흥미 등이 나름대로 자리잡아가기 전에 등수 경쟁에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얻는 것은 하기 싫은 것을 하게 하는 경쟁성이고 잃는 것은 의욕과 흥미일 것이다. 의욕 없이 억지로 하는 것들은 오래하지 못하고, 해도 고통이 크며, 잘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자라는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그들이 커가면서 자신의 재능, 의욕과 성격에 맞는 것을 자신이 선택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서상철 캐나다 윈저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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