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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진학지도

일반고 경쟁력 어떻게 높일 것인가?

일반고가 무너졌다는 소리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 사립고의 위세에 밀려 대학입시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들은 일반고를 기피하고, 자연히 다시 일반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일반고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이런저런 대책을 쏟아내지만 상황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남 탓만 하면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자사고를 없애 그곳으로 갈 학생들을 일반고가 받는다고 해서 일반고가 살아나느냐는 지적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두렵고 귀찮더라도 변하지 않으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고,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대구 고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6명의 베테랑 교사들로부터 일반고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들어봤다.

 

 

◆남과 다른 교육과정이 중요하다(대륜고 김동현 교사)

올해부터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데 많은 자율권이 부여됐다. 그동안 특목고, 자사고와 달리 일반고는 고정된 교육과정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이제 좀 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각 학교도 이제 학교 중심의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관행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학생들의 진로에 맞춰 교육과정을 손질하고 진행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교육과정이 잘 편성됐다고 소문난 학교의 교육과정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다. 이를 그대로 모방할 경우 겉으로는 화려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어른 옷을 입힌 것처럼 어색한 교육과정이 될 뿐이다. 이는 학교마다 학생들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적만 두고 따져봐도 상위권이 두터운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가 교육과정이 같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하위권이 다수인 학교라면 이들을 위한 별도의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좋은 교육과정'이란 각 학교의 학생 수준에 맞춰 특색을 가진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짜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교사들의 이해와 협의가 선행돼야 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지 수요 조사를 시행할 때 주어진 과정과 과목 중에서만 선택하도록 하는 닫힌 설문은 지양하는 게 좋다. 학생이 수강하고 싶은 과목을 제한 없이 적도록 하는 열린 설문이라야 나중에 효과가 더 크다.

소수 학생만이 수강하고 싶다고 한 과목이라도 개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습에 대한 학생의 요구는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학교와 함께 해당 과목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교육과정은 번듯하게 편성했지만 입시,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에 유리하다는 핑계를 대며 실제는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수능시험에 나오는 과목과 내용만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가령 물리Ⅱ, 화학 Ⅱ 과정을 편성해두고 물리Ⅰ, 화학Ⅰ을 반복 학습하거나 고급수학 과정을 운영한다고 하고선 실제로는 EBS 교재를 두고 수학 문제 풀이를 하는 식이다.

대학은 바보가 아니다. 그 같은 관행을 모를 리 없고, 해당 학교의 실적이나 학생부 기록을 믿어주지 않는다. 수시모집이 대세인 현재 대학입시에서 그런 고교의 입시 결과는 당연히 좋을 리 없다.

입시 준비에는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이 유리하다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학생들도 매년 바뀌고 있다. 오래도록 유지해온 강의 중심의 수업이 요즘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 방식으로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한다.

 

 

◆대입 수시모집과 연계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덕원고 김명수 교사)

특목고나 자사고 등 일부 학교는 우수한 학생을 쓸어가 성과를 올리고 일반고는 최대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은 다양한 종류의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유형별로 다양한 종류의 교육이 제공돼야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구 경우 정시모집에 치중, 수능시험 성적 올리기 경쟁이 더욱 두드러져 왔던 게 사실이다. 수시모집에서 전체 인원의 65%를 선발하는 현실에서 35%에 그치는 정시모집에 목을 맨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수시모집 준비에 대한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생 지도와 동시에 다양한 수시모집 전형에 대한 지원 전략을 세세히 수립하기 쉽지 않다. 선발 인원이 많은 전형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전략을 수립한다 해도 고3이 돼서야 부랴부랴 준비하는 것 또한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반고 역량을 강화하려면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면 학교별로 특성화된 교육과정도 가지면서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 분야에 있어서도 현실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각 교육청은 일반고가 학교 교육과정 자체를 수시모집 전략과 연동해 설계할 수 있도록 수시모집 전형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고 진로`진학에 대한 전략, 학교별 맞춤형 교육과정 설계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희망을 준답시고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힘든 특수 사례 몇 가지를 제공하는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다수 학생이 지원하고 진학하고 싶어 하는 인기 대학, 인기 학과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제공돼야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맞춤형 진학 지도의 성공 사례, 학교별 효율적 교육과정 설계 방법을 공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핵심은 일반고가 학생의 진로`진학에 대한 지도 방식, 경쟁 방식에 대해 특목고, 자사고와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일반고의 역량 강화는 물론 교육 다양성 확보라는 고교 다양화 정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업 개선에서 답을 찾자(효성여고 박규장 교사)

지난 몇 년간 특목고와 자사고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서 일반고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고 있다. 일반고는 우수한 신입생이 줄어들어 고민이다. 더구나 특목고, 자사고에 비해 학생 수준이 천차만별인 탓에 이들을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일반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역량과 소질에 맞는 맞춤형 진로 집중 교육과정을 개설해야 한다. 진로 집중형 교육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각 학생이 진로에 맞춘 수업을 듣고 탐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시모집에 맞는 입시 전략을 다양하게 세울 수 있다. 정규 수업 시간 때 적용하기 힘들다면 현재 수능시험 위주로 돌아가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바꿔 이 과정을 진행하면 된다.

학교별로 챙기기 어려운 소수 선택 과목은 여러 학교가 연합해 운영하는 것이 좋다. 대구에서 이 방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는지는 의문이다. 이 같은 방식이 왜 필요한지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을 이해시키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교실 수업의 개선이다. 수업을 바꾸지 않고는 학교의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교사들은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칠 게 아니라 학생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 교과를 재구성, 수업에 적용해야 한다. 해당 수업 때 한 단원 전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몇 가지를 꼭 익히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수업 방식에 변화를 준 뒤에는 학생들의 활동에 따른 결과물을 만들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진로에 맞춘 학습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각종 교내 대회도 활성화해야 한다. 강의식 수업, 수능시험 위주 수업에서 탈피해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을 해야 교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일반고에는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다닌다.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활동을 하려면 각 학생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고민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규 수업과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짜고, 이 두 가지가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특색 있는 '학교의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더 좋은 진학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교육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공교육 정상화의 기틀을 다지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동아리 활동 내실화에서 활로 찾자

 

▷원화여고 이영세 교사=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이 확대 추세다. 수시모집에선 학생들의 다양한 체험 활동이 합격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교과 수업 못지않게 동아리 활동이 중시돼야 한다.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이 진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각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 다양한 체험 활동 확대라는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지 의문이다.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려면 우선 이 활동에 대한 지도교사와 관리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동아리 활동이 시간 때우기 식으로 운영돼선 곤란하다. 학생들에겐 교과 수업 시간보다 더 중요한 시간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동아리를 조직하고 학생들을 가입하게 하는 방식도 버려야 한다. 최대한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해 동아리를 꾸려야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내고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 또 동아리 활동 후엔 발표회나 경연 대회 등을 통해 반드시 그 활동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해야 교육 활동으로서의 의미가 커진다.

 

▷대구동부고 조상환 교사=일반고의 역량을 강화하려면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자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학습 과정 및 전략, 학습 자원을 결정해 학습을 수행한 뒤 학습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일련의 학습 과정이다.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자기주도학습 동아리를 운영하는 게 효과적이다. 소논문, UCC 발표대회를 열어 학습 동아리 활동 결과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그 결과를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기재하면 대입 수시모집에도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강북고 이봉우 교사=주말을 이용해 구성원이 함께 토론, 실험하고 공부하는 학습 동아리를 운영하는 게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이 꿈꾸는 진로에 따라 모인 동아리는 강의식, 주입식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 스스로 활동을 주도하고 책자 발간, 결과물 발표 등의 과정까지 진행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리더십, 협동 정신과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 친구는 물론 선`후배 간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도 장점이다. 학교 입장에서도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높일 수 있는 데다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돼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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