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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진로지도

청년으로 산다는 것

연애와 결혼, 출산에 이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마저 포기한다는 ‘5포 세대’. 언제부턴가 이 땅의 청년들에겐 용기와 희망이 아닌 비관과 절망의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실제 청년들은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며 인식할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가 청년층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산출한 ‘청년활력지수’는 100점 만점에 46.0점으로 나타났다. 50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치다. 이 지수는 일자리·연애(결혼)·출산(육아)·인간관계·주거 등 5개 항목에서 청년들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를 물어 지수화한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청년들의 ‘활력’ 정도가 큰 격차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중상층 이상인 응답자의 활력지수는 54.0점이었으나, 중간층(48.8점), 중하층(43.1점), 빈곤층(38.9점)으로 갈수록 낮아졌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자산이다. 물려줄 자산이 없는 부모를 둔 청년층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자신감이 매우 낮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녀 세대의 출발선과 기회가 달라지는 이른바 ‘세습 자본주의’가 이미 청년들의 인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셈이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자산과 소득 수준이 더 중시되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경쟁의 결과에 순순히 승복하기는 쉽지 않다. “청년들이 맞닥뜨리게 될 공정성과 정의의 상실은 우리 사회 미래의 뇌관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어떨까? 같은 항목에 대해 ‘10년 뒤 자신감’을 물어 산출한 ‘미래 활력지수’는 51.3점으로 나타났다.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현재 활력지수(46.0점)와 별반 차이가 없다. 불안한 현실이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란 기대 또한 크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도 “현재보다 미래를 낙관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낙관은 현재를 끌고 가는 힘인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낮다는 것은 청년세대가 나아갈 방향이나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라고 해석했다.

현재 활력지수를 구성항목별로 살펴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평균 3.29점(최저 1점~최고 5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연애 및 결혼에 대한 자신감이 평균 2.85점으로 나타났고, 일자리(2.85점), 주거(2.65점), 출산 및 육아(2.52점) 차례였다. 인간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항목들 모두 중간 수준(평균 3점)에 미치지 못했다. ‘10년 뒤 자신감’은 항목마다 현재 지수에 견줘 조금씩 높게 나타났다. 인간관계(3.32점), 연애 및 결혼(3.09점), 일자리(3.04점), 주거(3.00점), 출산 및 육아(2.74점) 차례다. 현재든 미래든 청년층의 자신감이 가장 낮은 항목은 출산 및 육아 문제다. 청년층의 출산 기피로 인한 저출산 심화는 미래의 핵심 생산계층이자 노인 부양층의 축소를 의미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출산율 저하는 경제성장에 나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납세자가 감소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이중의 고통을 준다”며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공적인 영역에서 흡수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5개 항목 중 청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하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 39.1%로 가장 높았다.

청년들의 ‘자존감 지수’는 51.6점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지원, 미래의 희망과 자신감 등을 지수화한 것인데, 여기에서도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른 ‘세대 내 격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응답은 중상층 이상 82.8%, 중간층 74.4%, 중하층 71.3%, 빈곤층 68.3% 순서였다. 이어 ‘실제로 미래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신감’을 물었더니, 중상층 이상은 74.2%, 중간층 66.8%, 중하층 56.2%, 빈곤층이 51.1%였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차이가 중상층 이상에서는 8.6%포인트인 반면, 빈곤층에서는 무려 17.2%포인트에 달했다. 빈곤층 청년들은 미래의 꿈을 꾸는 것에서도 위축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훨씬 더 떨어진다는 얘기다.

청년들의 사회적 신뢰, 네트워크, 협동에 대한 인식을 물어 지수화한 ‘협동 지수’는 100점 만점에 53.6점으로 나타났다. 여기서도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지수가 높았다. 장덕진 교수는 “가난한 집 청년층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구를 보면 우리 사회 사회적 자본의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가 0.8이 넘는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는 소수의 사람은 안 통하는 데가 없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 데도 안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 정도와 참여 의지 등을 물어 구성한 ‘사회참여역량 지수’는 64.3점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절망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청년들 스스로 활발한 사회 참여에 나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징후로 볼 수 있다.





가난한집 청년에겐 결혼·출산이 ‘특별한 것’ 돼

가치 변화로 이어지는 ‘청년 불안’

청년층의 ‘불안’은 가치 변화로 이어졌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청년의식 조사를 보면,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과 출산이 꺼려진다’는 응답이 각각 평균 69.7%, 74.9%에 달했다. 둘 중 한 명(52.7%)은 연애도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청년 활동가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연애마저 꺼려진다는 결과는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20대 후반(25~29살), 이른바 ‘이행기 청년’들이 각각 75.8%, 79.3%로, 다른 연령대 청년층에 견줘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정준영 청년유니언 정책실장은 “청년실업이 구조화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상당 기간을 반듯한 일자리 없이 견뎌야 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소득이 없어도 주거를 위한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20대 후반”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 이행기에 놓여 있는 청년층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청년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청년 문제는 단지 일자리 확대뿐 아니라 주거·출산·육아 등의 영역에서 포괄적인 사회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응답자가 많았다. 빈곤층의 경우, 결혼과 연애를 꺼리는 응답자 비율이 각각 76.7%와 83.9%로 평균보다 각각 7.0%포인트와 11.0%포인트 높았다. 반면 중상층 이상에서는 각각 56.4%와 62.6%로 나타났다. 사회적 지원이 취약해 가난한 부모를 만난 청년들에겐 결혼과 출산이 ‘아주 특별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결혼과 출산을 아예 거부하는 징후도 보인다. 결혼과 출산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각각 32.5%, 35.1%로 나타났다. 청년 셋 중 한 명꼴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인데, 이런 선택에는 경제적 부담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들은 어떤 문제로 가장 불안해할까? 두 가지를 고르게 한 결과, ‘고용 및 일자리’가 61.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연애와 결혼’(41.7%), ‘주거비 부담’(27.8%), ‘빚 부담’(19.3%), ‘출산 및 육아’(16.1%) 순서로 나타났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 청년층이 ‘생산적 경제활동’부터 포기하고, 그다음엔 ‘사적 감정’, ‘생활의 최소조건’, ‘세대 재생산’의 순서로 포기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는 분석(장덕진 서울대 교수)이다. 장덕진 교수는 “그 결과는 성장률 하락, 비혼율 증가, 극단적 양극화, 출산율 하락 및 고령화 가속화로 이어져 사회 전체가 침체되는 불행한 경로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세대갈등 프레임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여론조사 결과 토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18일 발표한 ‘청년의식 조사’에 대한 토론에서는 “‘세대 내 격차’ 프레임으로 청년 문제를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조사는 일자리와 출산, 미래 자신감과 꿈을 실현하는 기회, 불안과 희망과 같은 감정 등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좌우되는 불평등한 청년세대의 현실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청년세대는 불이익을 감내하고 노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빈곤율이 공존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기존의 세대갈등 프레임은 부족한 자원을 놓고 ‘누가 더 가난해야 할까’를 결정하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도 “청년 정책이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주거를 안정시키며, 부채문제 해결을 통해 자산축적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세대 내 평등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한귀영 사회조사센터장은 “정부가 기성세대의 ‘청년 착취론’을 내세우며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세대간 연대로 풀어야 할 문제를 청년만의 문제로 고립시키는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고 진단했다.

패널들은 청년 문제를 종합적·거시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청년세대가 노인들을 부양할 능력이 안 되면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능력은 있지만) 의지가 없다면 세대간 전쟁으로 비화할 것”이라며 “청년 문제는 한국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