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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최고 명문 아테네대학에 다니는 스타마티스 사바니스(29·고고학과 4년)씨의 대학 시절은 평탄했다. 모든 그리스 대학생처럼 그는 등록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고, 대부분 학생이 그렇듯이 그도 8년째 대학에 적(籍)을 둔 채 군대까지 마쳤다. 그는 무상(無償)교육을 보장하는 그리스의 복지제도에 감사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졸업이 닥쳐오면서 가혹한 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기생 앞에 기다리는 것은 월 500유로(약 80만원)짜리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그는 "그리스에서 졸업장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일자리 자체가 없는데 명문대를 나온들 무슨 소용 있느냐는 것이다.

무상교육은 그리스 복지제도가 내세우는 자랑거리 중 하나다. 학부는 물론 대학원 석사·박사과정도 등록금 한 푼 받지 않고, 기숙사비까지 모두 공짜다. 부자든, 가난하든,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복지 철학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인재를 배출해놓고 정작 일자리는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에선 매년 8만5000명의 대학 졸업생이 사회에 나온다. 하지만 청년층을 위한 정규직 일자리 공급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올 상반기 그리스의 청년(15~24세) 실업률은 43%에 달했다.

그리스엔 관광·해운 외에 변변한 산업이 없다. 기업이 못 만드는 일자리를 그리스는 정부가 대신 제공해왔다. 예산을 쏟아붓고 외국에서 빚까지 얻어다 공무원과 공기업 일자리를 마구 늘린 것이다. 필요하지 않아도 일자리를 주기 위해 공무원을 채용한다는 식이었다.

그 결과 그리스는 노동인구 4명 중 1명(85만명)이 공무원인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그리스의 공무원은 오후 2시 반까지 일한다. 그러고도 온갖 수당과 연금혜택은 다 받아간다. 공무원 자체가 통제불능의 거대한 이익집단이 됐기 때문이다.

GDP의 53%(2010년)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 지출은 공무원 월급 주느라 허덕일 지경이다.

1980년대 초까지 그리스 경제는 유럽의 우등생 그룹에 들었다. 그랬던 그리스가 30년 만에 망한 까닭에 대해 그리스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미스터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 미스터리'의 구조는 의외로 간단했다. 돈으로 표를 사는 정치인, 그리고 그런 정치인을 계속 뽑아준 유권자의 합작품이었다. 앞서의 사바니스씨는 "기성세대가 정치인의 선동에 넘어가 표를 몰아준 탓에 이 꼴이 됐다"고 했다.

꿈도 희망도 잃은 청년들을 그리스에선 '700유로(약 110만원) 세대'라고 지칭한다.

일자리 대신 소비성 복지에 돈을 쓴 그리스 모델은 유럽에서도 가장 비참한 '700유로 세대'를 낳았다.



아테네=박정훈 기사기획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