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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건강관리

발의 비명 “하이힐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발이 엄청나게 못생겨졌어요. 맨발로 있기가 창피해요. 발가락이나 발뒤꿈치가 드러나는 신발은 못 신죠.” 고교 졸업 때부터 하이힐을 신은 이경민(23·대학생)씨. 굽 높이 9㎝ 이상의 킬힐을 자주 신는다. 요즘 발이 변형돼 고민이 많다. 처음엔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는 정도였다. 차츰 새끼발가락 뿌리 뼈가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둘째·셋째발가락이 오그라들었고 티눈이 생겼다. 구두 뒤가 닿는 발뒤꿈치 뼈가 자라 볼록하게 튀어나오고 피부도 검붉게 변했다. 이씨는 “하이힐이 발을 망치는 걸 알지만 신으면 예쁘고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편한 신발을 신은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구두 굽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다. 신발 볼도 아기 손바닥처럼 좁다. 발이 보호되지 않고 오히려 구겨져 있다. 양말을 신고 구두를 신는 여성은 거의 없다. 봄여름엔 스타킹 없이 주로 맨발이다. 구두와 닿는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까지면서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는다. 신데렐라 유리구두처럼 달콤하고 로맨틱한 구두가 괴상하게 변형시킨 여성의 발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주연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여성의 발 변형 잘 돼 … 족부클리닉 환자 90%가 여성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결과 엄지발가락이 휘어 진료받은 무지외반증 여성 환자는 2009년 3만6000명으로 남성보다 일곱 배 많았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이동연 교수는 “발 변형으로 족부클리닉을 찾는 환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이라며 “여성의 발은 남성보다 관절이 유연해 변형이 생기기 쉽다”고 설명했다. 발에는 26개의 뼈와 100개가 넘는 인대·근육·신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성의 발은 조직이 단단해 불편한 신발을 견뎌 내지 못한다. 반면 여성의 발은 부드러워 좁은 공간에도 잘 들어간다. 신어지니 괜찮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변형이 시작된다.


볼 좁은 신발, 발가락 휘고 뼈 튀어나오게 해

섹시한 하이힐은 최악의 신발이다. 굽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뾰족한 앞코가 치명타를 입힌다. 여성 신발은 대개 볼이 좁다. 하이힐은 발이 앞으로 밀려 내려가지 않도록 앞코를 더 좁게 만든다. 부챗살처럼 펼쳐져야 할 발가락들이 비좁은 신발 속에서 들러붙는다. 오래되면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이 안쪽으로 휜다. 이 같은 ‘외반증’은 한 번 진행하면 멈추기 힘들다.

 밀려난 다른 발가락도 변형된다. 발가락끼리 겹쳐져 층을 쌓기도 한다. 발가락 사이에 굳은살이 생긴다. 옛날엔 버선을 오래 신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엄지·새끼발가락이 틀어지면 양쪽 뿌리 관절이 바깥쪽으로 튀어나온다. 뼈와 조직에 압력이 쏠리면서 혹처럼 자란다. 관절 사이에서 마찰을 줄여 주던 건막조직이 염증을 일으키는 ‘건막류’다. 부은 부위가 신발과 마찰하면서 굳은살(과각화증)이 심해진다.

 좁은 앞코는 ‘망치족지’를 만든다. 발가락이 아래로 구부러지고 관절 위에 티눈이 생기는 것. 굽이 높은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을 지나는 근육과 인대가 지나치게 당겨지면서 발가락이 오그라든다. 이 상태로 굽은 발가락이 좁은 신발에 맞닿으며 관절에 변형이 일어난다.


굽 높아지면 엉덩이·가슴 커보여 … 대신 허리·어깨·목 통증

뒷굽이 가늘고 높을수록 발목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평지를 걸어도 자갈밭을 걷는 것처럼 피곤하다. 발목에 염증과 통증이 발생한다. 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 박시복 교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근육이 긴장해 허리·어깨·목 뒤가 아프고 허리 등뼈가 앞으로 굽는 요추전만증이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여성은 왜 균형 잡기도 어려운 하이힐을 신을까. 몸매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8㎝ 굽을 신으면 골반이 앞쪽으로 15도 쏠린다. 몸을 일직선으로 펴면 척추의 곡선이 심해져 엉덩이와 가슴이 올라가 커 보인다. 종아리와 대퇴부 근육이 긴장해 더 탄력적으로 보인다.(『신발이 내 몸을 망친다』, 다니엘 호웰)

 그러나 8㎝ 굽을 신으면 체중의 90%가 앞발에 실린다. 그 부위가 팔 저리듯 찌릿거린다(지간신경종). 발가락 사이 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딱딱한 덩어리가 되는데, 발을 잘못 디디면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낀다.

 높은 굽을 신으면 발가락과 발바닥이 만나는 족저 부위에 체중이 몰려 굳은살이 생긴다. 이동연 교수는 “압력이 고루 퍼지지 않고 굳은살이 생긴 부위에 집중됐다는 뜻”이라며 “신발이 발에 맞지 않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발을 작게 보이려고 작은 신발을 신는 여성이 많다. 발뒤꿈치 뒷면이 구두에 닿아 붓기 쉽다. 뼈와 피부 사이 조직(점액낭)이 신발과 닿아 염증을 일으키고 부었다가 딱딱해지면서 혹처럼 자라는 헤이글런드 기형이다. 굳은살인가 하고 문질러도 없어지지 않는다.

 벗겨지기 쉬운 플랫슈즈도 작게 신는 경향이 있다. 하이힐보다 낫지만 밑창이 너무 얇아 딱딱한 바닥을 디뎠을 때 충격을 전혀 흡수하지 못한다. 발바닥을 지나는 족저근막과 신경, 발목·무릎 관절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걸을 때 발가락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되는 단점도 있다.

 발바닥 전체가 통굽으로 된 웨지힐은 어떨까. 지면에 닿는 면이 하이힐보다 넓어 균형 잡기는 편하지만 기울어진 각도가 높아 마찬가지다. 이동연 교수는 “하이힐은 뒤꿈치 후 앞꿈치가 닿아 ‘또각또각’ 걷는 데 반해 웨지힐은 전체 발바닥으로 ‘턱턱’ 걸어 발목과 무릎·허리 관절에 나쁘다”고 했다.


젊을 때부터 누적된 발 변형, 40대부터 통증 느껴

젊은 여성은 발이 망가져도 예쁜 신발을 고집한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대개 40대에 나타난다. 발이 쉽게 변형되는 데는 유전적 원인이 있으므로 부모 중에 발 질환이 있다면 신발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신발은 바닥 쿠션이 충격을 잘 흡수하고 안정적인 게 좋다. 가능한 한 운동화를 신고 구두는 발볼이 넓고 굽 4㎝ 이하로 고른다. 최근 유행하는 옥스퍼드구두(사진)처럼 발등을 감싸 끈으로 조이는 형태를 권한다. 양말을 신어 충격을 완화하고 발 피부를 보호한다. 물집이 생기거나 빨개지면 반창고를 붙인다. 집에서도 푹신한 실내화를 신는다. 이동연 교수는 “신발에 발을 맞추면 발 질환이 생긴다”며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신발 때문에 발이 망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러스트=강일구

마사지·스트레칭 자주하고 발바닥 패드 써야

발 변형이 시작됐다면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발을 보호한다. 어쩔 수 없이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면 운동화를 휴대하며 갈아 신는다. 자주 신발을 벗어 발 운동을 한다. 발가락 사이를 벌리거나 발을 구부리고 젖힌 상태에서 6초씩 버틴다. 엄지와 둘째발가락이 잘 안 벌어진다고 손 힘으로 벌리면 외반증이 심해지니 발가락을 평행하게 잡아 주는 보조기구를 이용해 꾸준히 벌린다.

 걸을 때 통증이 심하면 발 뼈를 잘라 교정하는 수술을 한다. 휜 발가락은 펴고 튀어나온 부위는 밀어 넣는다. 이경태정형외과 이경태 원장은 그러나 “수술해도 발과 피부가 변형 전처럼 돌아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발뒤꿈치 뼈가 많이 튀어나왔다면 깎아낼 수 있지만 재발이 잦아 권하지 않는다. 뒤가 닿지 않는 신발을 신어 혹을 줄인다. 이외 발 질환에 주사·전기·온열·한랭치료를 시행한다.

 발바닥이 아프거나 굳은살이 있다면 족욕과 마사지·스트레칭를 한다. 문제 부위에 맞는 발바닥 패드를 사용하면 압력이 분산돼 통증이 줄어든다. 박시복 교수는 “발이 정상일 때 올바른 신발을 신어야 예쁘고 건강한 발을 간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발로 발을 망치지 않으려면
●신발 길이는 제일 긴 발가락보다 1㎝ 크게 신는다
● 앞꿈치가 자신의 발볼보다 둥글고 넓은 신발을 고른다
● 뒷굽 높이는 4㎝ 이하가 적당하다
● 패션보다 발의 편안함을 고려한다(쿠션감·통기성·내구성 등)
● 걸었을 때 엄지발가락 뿌리관절과 신발 바닥의 구부러지는 부위가 일치하는지 살핀다
● 발바닥 모양에 맞는 깔창을 깔아 발의 피로를 줄인다
● 너무 오래 신어 밑창이 많이 닳은 신발은 신지 않는다
● 굳은살은 따뜻한 물에 발을 불린 뒤 제거하고 로션을 바른다
● 주 1회 이상 미지근한 물에 족욕을 하고 발을 충분히 마사지한다